아메리카노의 본질은 에소프레소지 결코 물이 될 수 없다. 에소프레소보다 물의 양이 훨씬 더 많더라도 말이다. 최고급 생수 에비앙의 할아버지를 가져다 넣더라도 아메리카노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카나우바왁스에 카나우바보다 솔벤트의 함량이 훨씬 높더라도 솔벤트가 본질은 될 수 없듯이.
그럼 카나우바왁스의 본질은 카나우바일까?
나는 이 질문에 다소 심각한 이의를 제기한다.
카나우바왁스를 졸이면 속이 보인다.
카나우바왁스를 가열해서 재료들의 함량을 가늠하는 방법은 4년전 카나우바왁스를 분석하기 위해 이미 시도했던 것으로 이번에는 다른 왁스를 대상으로 시험해봤다. 카나우바왁스 레시피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황에서는 상당히 유용한 방법임에도 웹상에서는 이런 시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이상할 따름이다. 아니면 내가 찾지 못한 것일 수도.
다소 심각한 이의제기는 카나우바왁스 성능의 본질이 카나우바 플레이크가 아닐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다시 말하면, 혹시 다른 물질이 카나우바왁스 성능의 본질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던지는 것이다.
고급 브랜드의 카나우바왁스를 졸여보았다.
중탕으로 졸이다가 반응이 늦어 중탕물 빼고 가열하자 이내 곧 하얀액이 흐물흐물 분리되기 시작했다.
반구틀 중앙에 약간 탁한 액이 뭉치기 시작했다. 이때 반구틀의 온도는 95도 전후였다.
계속 졸이다보니 액의 색상은 더욱 짙어졌고 하얀액의 양도 많아졌다.
솔벤트의 완전한 휘발을 위해서 더 가열을 유지할 필요는 있었지만 이번 테스트의 목적은 함량 분석이 아니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졸임을 멈추고 액을 식혔다. 가운데 모인 하얀 액이 크림처럼 변했다.
그렇다. 다소 심각한 이의제기는, 저 하얀 크림같은 물질이 왁스의 '액기스'가 아닐까하는 것이다. 그렇담 저 푸르딩딩하게 굳어있는 카나우바는 뭐란 말인가? 아메리카노의 에비앙 생수쯤 되는 것일까? 저 하얀 크림과 원래의 카나우바왁스를 테스트 판넬에 발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보기로 했다.
테스트 판넬은 폴리싱으로 표면 클리닝 후 카샴푸 원액을 부어 마구 문질러줬고 그 위에 물을 뿌려 다시 열심히 문질러 세척했다. 약발수의 물빠짐(쉬팅)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탈지여부보다는 현재의 발수상태를 기억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오른쪽보다는 왼쪽의 물빠짐이 약간 느리게 보인다.
하얀크림을 바를 때의 느낌은 미끌거리기는 했으나 퍼짐성은 좀 떨어지는,,,그래서 저 작은 부위를 바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다른쪽에는 원래의 카나우바왁스를 손으로 떼어내어 꼼꼼히 발랐다.
왼쪽이 하얀크림을 바른 곳이고, 오른쪽이 카나우바왁스를 바른쪽이다.
슬릭감과 광택감의 차이
약 5분 후 각각 다른 타월로 버핑을 끝냈고, 손끝으로 각각의 부위를 터치했을 때 하얀 크림을 바른쪽이 더 슬릭함을 느꼈다. 육안으로는 양쪽간 광택감의 차이를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작은 부위에 발라놓고 광택감의 차이를 느끼기는 사실 매우 어렵다.
발수력 평가
버핑 직후의 발수력을 비교해봤다. 좌우의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볼 수 있다.
화이트 카나우바 플레이크가 들어가면 발수력이 더 좋아질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카나우바 함량이 높을수록 발수력이 더 좋아질거란 생각도 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세차 내구성 평가
카샴푸를 아주 진하게 타서 스폰지로 각 부위를 동일하게 열심히 박박 문질렀다.
다음은 1회 세차 후 헹굼하는 장면이다.
샴푸액이 씻겨내려간 후부터는 세차 전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발수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왼쪽편은 카나우바 피막도 없는데 강한 세차에도 잘 버텨주고 있다. 발수력으로 카나우바 피막이 있다 없다를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비온 후 본넷에 물방울이 짱짱하게 맺혀있는 것에 카나우바 피막 덕분이라며 좋아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다음은 동일한 방법으로 2회 세차 후 헹굼하는 장면이다.
2회 연속 세차에도 양쪽간의 발수력엔 차이가 없어보인다.
다음은 동일한 방법으로 3회 세차 후 헹굼하는 장면이다.
여전히 발수력은 뛰어나다. 보기엔 카나우바왁스를 바른 오른쪽이 아주 약간 더 발수력이 좋아보인다. 그러나 유의미한 차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음은 동일한 방법으로 4회 세차 후 헹굼하는 장면이다.
이번엔 스폰지로 더 박박 닦았건만 양쪽 모두 발수력엔 큰 차이가 없었다. 아무래도 카나우바 피막 덕분에 세차를 해도 비딩이 짱짱하게 살아있다고 좋아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발수력과 발수력의 세차 내구성면에 있어서, 카나우바 왁스를 바른쪽과 카나우바왁스에서 추출한 하얀 크림만 바른쪽과 어떤 차이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럼 카나우바는 대체 뭐란 말인가?
그렇지만 카나우바의 나름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테스트판넬의 왼쪽편에 하얀 크림을 바를 때 바르기가 무척 불편했다. 퍼짐성이 떨어져 좁은 부위를 반복해서 발라가며 전체를 바를 수 있었다. 그 하얀 크림은 카나우바왁스 2g에서 추출되었다. 카나우바 왁스 2g의 분량이면 하얀 크림을 바른 부위 면적의 10배 가까이 바를 수 있는 양이다. 카나우바가 들어감으로 인해서 물성이 바르기 쉽게 변했고, 최적의 물성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솔벤트 덕분에 바를 때의 퍼짐성이 아주 좋아졌다. 또한 하얀 크림을 더 많이 바른다고 해서 왁스의 기본 성능에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는 않기 때문에 카나우바와 솔벤트에 적당량의 비율로 첨가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카나우바는 예로부터 광택효과를 위해 첨가되는 물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얀 크림을 바른 쪽보다는 카나우바왁스를 바른 쪽이 광택효과가 좋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가능성이 높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테스트 판넬만으로는 사실 광택감의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카나우바 피막의 존재만으로도 외부 위해요소로부터의 물리적 방어막을 형성한다. 카나우바 피막이 설령 슬릭감, 발수력, 광택감에도 영향을 주는 요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물리적 방어막 그 자체는 매우 유익한 존재이다. 그러나, 카나우바 피막의 존재를 확인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져버렸다. 슬릭감으로도, 광택감으로도,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그렇게 믿어왔던 발수력으로도 카나우바 피막의 존재를 구별할 수 없어졌으니 말이다. 여름에 카나우바왁스를 발랐을 때 열을 받고 나타나는 헤이즈(haze) 현상을 통해 카나우바 피막의 존재를 느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보다 명확해진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왁스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했던 기준들은 카나우바 피막 자체의 존재를 평가하는데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동안 카나우바 왁스의 성능이라 생각했던 그 특성들이 사실은 카나우바라기보다는 첨가물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카나우바가 왁스의 성능에 아무것도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 까지는 밝히지 못했지만, 카나우바왁스의 퍼포먼스는 카나우바의 역할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도 될만큼의 증거는 확보한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왁스를 만드는데 꼭 카나우바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왁스를 만들어보면서 경험해본 몇가지 왁스재료들 비즈왁스, 칸데릴라왁스, 세레신왁스, 파라핀왁스, 오조케라이트 왁스 등은 각각의 왁스재료를 카나우바 대신 주원료로 사용했을 때 문제점이 있다. 발림성은 솔벤트의 함량과 실리콘의 도움으로 별 문제가 되지 않으나 닦임성에 있어서는 심한 잔사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그런면에서 카나우바는 아주 훌륭했다. 물론 카나우바를 주원료로 하고 다른 왁스를 약간 첨가하는 정도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카나우바만큼 왁스 잔사를 남기지 않는 왁스재료가 있다면 카나우바 대신 써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저 하얀 크림같은 물질의 정체는?
고급 브랜드의 카나우바 왁스 제조사들은 대체로 그들이 그동안 구축해놓은 프레임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카나우바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시멘트보다도 더 단단한 물질이다. 카나우바함량이 높을수록 왁스의 퍼포먼스는 뛰어나다. 카나우바의 정제도가 높을수록 광택감이 뛰어나다. 천연재료들을 사용하여 인체에 해롭지 않다.'
지금은 오히려 소비자가 이런 프레임에 편안해할 수도 있다. 화이트 카나우바의 함량이 높을수록 왁스가 고가인건 이상할게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난 저 하얀 크림같은 물질을 실리콘이라 생각한다. 미끌거리고, 발수력 좋고, 바르면 반짝거리는 물질.
나의 홈메이드 왁스에도 실리콘이 들어간다. 그리고 왁스를 졸여보면 저 하얀 크림같은 물질로 추출된다. 실리콘이 들어갔을 때의 장점은 아주 많다. 솔벤트와 적절한 비율로 혼합되었을 때 왁스의 발림성과 닦임성이 매우 좋아진다. 또한 실리콘을 넣지 않았을 때는 어떤 피막감을 느끼기 어려웠으나 실리콘을 첨가하면서 왁스의 피막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가 취할 수 있는 실리콘의 종류가 매우 제한적이다보니 발수력 향상에는 별 재미를 못보았다. 물론 다른 방법으로 왁스의 발수력을 향상시켰지만 발수력까지 뛰어난 실리콘을 사용할 수 있다면 홈메이드 왁스의 완성도는 분명 더 높아질 것이다.
실리콘의 종류가 많고, 다양한 점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리콘이 들어간다는 사실만으로 뛰어난 성능의 왁스를 바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리콘의 종류, 점도의 선택(필요에 따라서 몇가지 점도의 실리콘을 혼합해서 적합한 점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첨가되는 실리콘의 비율 등이 잘 맞아야 비로소 충분한 성능발휘가 된다.
그런데 왁스에 실리콘이 들어가면 천연왁스가 아니지 않느냐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실리콘(하얀 크림같은 물질)이 들어있지 않은 카나우바왁스를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자이몰, 스위스벡스, P21S, 케미컬가이, 블랙화이어, 숄컨셉...모두 녹여서 졸여봤지만 예외는 없었다. 자사의 카나우바 왁스에 실리콘이 들어간다고 스스로 밝히는 회사도 있다. 그것은 차가꿈(디테일링) 애호가라면 익히 알고 있는 도도쥬스라는 회사이다. 그들이 실리콘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아주 고가의 천연왁스를 테스트해봤더니 실리콘 범벅(drowning in silicone)이었다. 거의 모든 제품에 실리콘이 들어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정작 제조사들을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
천연재료로만 100% 써서 왁스를 만들어봤지만 제대로된 왁스가 아니었다. 인공첨가제가 들어있지 않다는 제품들은 성능이 아주 떨어지는 제품이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100% 천연재료만 써서 만든 왁스로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는 제품이 있다면 IR Spectrometer(적외선분광기)로 검사해보고 싶다. 분명히 실리콘이 검출될 것이다. 이미 그렇게 해서 몇개의 제조사를 잡아낸 적도 있다.
실리콘이 들어간 도도쥬스 제품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고/중/저/무 함량으로 나눠보면...(생략)
도도쥬스는 카나우바왁스에 대해 상당히 솔직히 말해주는 거의 유일한 제조사이다. 그들은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그들의 제품에 실리콘이 들어가 있다고. 내 경험으로부터 얻은 생각들과 그들이 말하는 내용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보니 개인적으로 그들이 말하는 카나우바왁스 이야기를 신뢰하는 편이다. 물론 그들 역시 100% 신뢰하지는 않는다.
요 약
카나우바는 솔벤트와 기타 첨가제들과의 배합을 통해 베이스 왁스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어떤 면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보이기는 어렵다.) 카나우바왁스를 평가하는 지표들(물방울맺힘, 물빠짐, 광택감 등)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는 역부족이다. 소비자의 기대치를 총족시키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카나우바가 아니라 (그 하얀물질이 실리콘이라는 가정 하에서) 실리콘이 아닐까 강하게 이의를 제기해본다.
감사합니다.
# 업데이트 (2013. 11. 9)
본 포스팅 '카나우바왁스를 믿습니까?'에서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카나우바왁스의 성능은 카나우바가 아니라 실리콘에서 나온다.'라는 주장에 대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있음을 스스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중심으로 다음 포스팅을 작성할 예정입니다.
# 업데이트 (2013. 11. 12)
본 포스팅의 내용에 반론을 제기하고 카나우바왁스를 재탐구하는 포스팅을 작성하였습니다.
본 포스팅을 보셨다면 '카나우바왁스의 재탐구' 포스팅을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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