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 '카나우바왁스를 믿습니까?'에서 카나우바왁스 성능의 실체는 카나우바가 아닌 실리콘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다소 강한 문제제기를 했었다. 카나우바왁스를 졸여서 추출한 하얀 실리콘 덩어리를 발라봤더니 카나우바왁스를 발랐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여러가지 성능(슬릭함, 뛰어난 발수력, 광택감 등)이 그대로 연출되었다는 것을 그 근거로 삼아서 말이다. 두껍고 답답한 베일을 벗어버린 듯 시원하고 통쾌했다. 그러나 채 익지 않은 단감을 베어문 듯 첫맛의 달콤함은 금새 사라지고 포스팅의 텁텁한 뒷맛에 뒤통수까지 근질거리는 것이었다. 긴 여정의 첫번째 톨게이트를 이미 지나고 났을 때, 집 현관문을 제대로 닫은 것 같지 않은 찝찝하고 불길한 여운. 확인사살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실리콘 덩어리가 빠진 왁스는 앙꼬없는 찐방인가?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실리콘 덩어리가 빠진 왁스를 도장면에 발라봐야 한다. 실리콘 추출을 위해 대부분의 솔벤트가 휘발된 상태이기 때문에 홈메이드 왁스에 사용하는 솔벤트로 보충해서 왁스의 물성을 살려보기로 했다. 아래 청색의 왁스는 이전 포스팅 '카나우바왁스를 믿습니까?'에서 실리콘 추출을 위해 솔벤트를 기화시키고 남은 딱딱한 왁스덩어리들이다. (이 왁스는 자이몰 티타늄 왁스임.)
∥왁스에 묻어 있을지모를 실리콘 잔유물을 닦아내고 무게를 측정하였다.
∥ 홈메이드 왁스용 솔벤트를 첨가하였다.
∥ 왁스가 녹았으니 솔벤트와 잘 섞이도록 휘저은 다음 식히기만 하면 된다.
∥ 굳은 상태로보아 왁스와 첨가한 솔벤트와의 궁합은 괜찮은 듯 보였다.
∥ 원래 왁스의 물성과 비슷하게 만들어으나 약간 더 소프트하게 느껴진다.
실리콘 빠진 왁스 VS 오리지널 왁스
클리닝된 테스트 판넬의 왼쪽에는 실리콘이 제거된 왁스를, 오른쪽은 오리지널 왁스(아무 변형을 주지 않은 원래의 왁스)를 바른 다음 약 5분 후 버핑했다. 실리콘이 제거된 왁스의 발림성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버핑할 때 왼쪽편은 쉽게 잔유물이 제거되지는 않았다. 타월 방향을 따라 왁스 잔사들이 이리저리 흩어졌으나 반복적으로 닦아내자 잔유물들은 거의 제거할 수 있었다. 반면 오른쪽면은 몇번의 타월질로 깨끗한 면을 볼 수 있었다. 버핑 후 광택감은 왼쪽편이 약간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맑은 느낌이 덜하다고 할까.
페인트 클리닝 후의 도장 상태의 발수력은 약발수 상태를 보였다.
다음은 테스트판넬의 왼쪽엔 실리콘이 제거된 왁스, 오른쪽은 오리지널 왁스를 바른 다음 5분 후 버핑을 하였고, 샴푸 세차를 한 후 헹구는 장면이다. 이때 적잖이 당황했다. 실리콘이 제거된 왁스를 바른 쪽은 약발수이거나 오리지널 왁스를 바른쪽과는 현저한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물빠짐 속도에 있어서는 오리지널 왁스를 바른쪽이 조금 더 좋게 나타났다. 그러나, 실리콘이 제거된 왁스의 발수력도 제법 좋은 편이다.
여기서부터 나의 가설은 보기좋게 무너지고 말았다. 실리콘이 제거된 왁스는 앙꼬없는 찐방이 결코 아니었다. 앙꼬 없이도 충분히 단맛나는 찐빵이라고 할까.. 그래서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는지 다른 왁스를 집어들었다. 노란색을 띤 왁스는 블랙화이어 미드나잇썬, 분홍색은 내가 만든 홈메이드 왁스이다.
두 왁스를 녹여서 블랙화이어는 앞선 테스트와 동일한 과정으로 밟을 것이며, 홈메이드왁스는 거기서 실리콘을 추출하여 '재료 상태의 실리콘'과 '왁스에서 추출한 실리콘'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실리콘이 왁스 아래쪽으로만 모여 있어서 왁스를 깨뜨려 실리콘을 떠내야했다.
왼쪽은 왁스에서 추출한 실리콘을 발랐고, 오른쪽은 블랙화이어 왁스 그대로 발랐다.
5분 후 버핑한 다음 발수력을 비교해봤다. 실리콘만 바른 왼쪽편이 물빠짐에서 더 나은 현상을 보였다. 앞선 테스트 결과를 참고했을 때 동일하거나 원래의 왁스를 바른 오른쪽이 더 우세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이번에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블랙화이어 미드나잇썬의 발수력은 원래부터 그렇게 강력하진 않았다.
2회 샴푸세척 후의 발수력은 보다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실리콘만 바른 부위는 발수력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나 원래의 왁스를 바른 쪽은 눈에 띠는 발수력 저하를 보였다.
앞선 테스트와는 다르게 나타난 현상에 대한 해석은 일단 뒤로 미루고, 실리콘이 제거된 블랙화이어 왁스에 솔벤트를 첨가하여 이때의 발수력을 테스트해봤다.
Ⅱ 왼쪽편 : 실리콘이 제거된 블랙화이어 왁스, 오른편 : 블랙화이어 오리지널 왁스
실리콘이 제거된 왼쪽편의 물빠짐이 미세하게 더 느린감이 있으나, 양쪽간에 의미있는 차이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즉, 실리콘이 빠진 쪽이나 원래 왁스 그대로나 발수력의 차이는 거의 없다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지금까지의 테스트로 보았을 때 실리콘이 제거되더라도 왁스의 발수력은 실리콘이 제거되기 전과 의미있는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라고 일단락 맺을 수 있다. 실리콘이 왁스의 발수력을 약간 보충해줄 수는 있지만 왁스의 기본 발수력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켜주는 요인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왁스에서 추출된 실리콘은 기본적으로 왁스의 발수력 못지 않거나 왁스의 발수력보다 우세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재료 배합전의 실리콘 원액 vs 왁스에서 추출한 실리콘
아래의 반구틀에는 홈메이드 왁스를 만들 때 첨가되는 실리콘 원액이다. 이 실리콘 원액을 클리닝된 테스트 판넬에 바르고 버핑한 후 발수력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확인해보자.
왼쪽엔 실리콘 원액을 바르고 버핑한 곳이고, 오른쪽은 클리닝되어 약발수 상태를 보이는 도장면이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클리닝 된 도장면보다 아주 조금 더 나은 정도의 발수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왁스에서 추출한 실리콘을 발랐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현상이다.
아래는 1회 샴푸 세정한 후의 발수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샴푸세정에 의해 실리콘 성분이 닦여진 듯 왼쪽편의 발수력이 저하되었다. 실리콘 원액의 도포는 도장면에 아주 미미한 정도의 발수력 상승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실리콘의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일반화시킬 수는 없으며 최소한 내가 사용하는 실리콘에 한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사용하는 실리콘의 제품 특징으로 발수성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번에는 홈메이드 왁스를 졸여서 추출한 실리콘을 테스트할 차례이다. 위에 사용된 실리콘과 동일한 조성인데 다른점이 있다면 위의 것은 배합 전의 실리콘 원액이고, 이번에는 왁스에서 추출한 실리콘이라는 점이다. 원칙적으로 그 특성이 같아야만 할 것이다.
왼쪽엔 홈메이드 왁스를 졸여 추출한 실리콘을 발랐고, 오른쪽은 실리콘이 제거된 왁스를 발랐다.
홈메이드왁스를 졸여서 추출한 실리콘을 바른 왼쪽의 발수력에 주목해야 한다. 실리콘 원액을 발랐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제법 발수력이 좋은 상태이다. 실리콘 원액을 발랐을 때는 약발수를 면치 못했지만 지금은 강한 발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위의 테스트들을 통해 다음과 같이 내용을 요약할 수 있다.
'카나우바왁스를 믿습니까?' 포스팅에서 주장한 내용의 주된 근거로 삼았던 부분, 추출된 실리콘의 성능이 매우 우수하여 실리콘을 제외한 나머지 성분들은 왁스의 퍼포먼스에 크게 기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다.
카나우바왁스를 졸여서 추출한 실리콘에는 발수력을 가진 왁스나 첨가제가 미량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배합전 실리콘 원액은 점도 있는 투명한 액체 상태인데 반해 왁스에서 추출한 실리콘은 불투명한 크림 상태라는 점을 크게 문제삼지 않은 것에 문제가 있었다. 왁스를 졸여서 추출하면 그렇게 되는가보다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원액 자체가 발수력이 강한 실리콘이라면 배합 전 상태나 왁스에서 추출한 상태나 발수력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나, 원래 발수력이 약한 실리콘이라면 왁스에서 추출될 경우 왁스의 발수성분이 섞이면서 발수력에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왁스를 졸여 실리콘을 추출할 때 왁스로부터 실리콘이 완전히 분리,추출되는 것 같지 않다. 실리콘이 제거된 왁스의 발림성과 닦임성을 봤을 때 여전히 좋은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 실리콘에는 왁스성분이, 왁스에는 실리콘 성분이 서로 섞여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왁스를 졸여 추출한 실리콘의 객관적 성능 평가는 불완전하며, 실리콘을 제거한 왁스의 객관적 성능 평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분명한 것은, 이전 포스팅 '카나우바왁스를 믿습니까?'에서 주장한 내용 즉, 카나우바왁스의 성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왁스가 아니라 실리콘에 의한 가능성이 높다."는, 기본 전제(배합전 실리콘과 왁스에서 추출한 실리콘은 동일하다는 전제)를 확인하지 못한 테스트를 근거로 한 잘못된 주장임을 밝힌다.
홈메이드 왁스에 있어서 실리콘이란?
지난 포스팅 '카나우바왁스를 믿으십니까?'에서는 실리콘은 왁스에서의 '실력자'로 부각된 반면, 이번 포스팅에서는 '들러리' 정도로 강등된 것 같아 '실리콘'의 존재감에 대해 부연설명하고자 한다.
홈메이드 왁스를 만들면서 여러번의 고비를 만났는데, 그중 한 가지는 적당한 수준의 작업성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왁스가 너무 뻑뻑하여 바르기 어렵거나, 바르기 쉽도록 솔벤트 함량을 높이면 카나우바의 함량이 너무 낮아 발라기는 하지만 균일하게 발려지질 않았다. 또한 왁스를 바른 후 솔벤트가 완전히 마르기 전에 닦아내지 않으면 꽤 힘을 주어 닦아내도 듬성듬성 닦이지 않는 부분이 생겼다. 그렇다고 왁스를 바르고 바로 닦아내면 카나우바 왁스가 도장면에 달라붙어있지 않고 모두 닦여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실리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의 홈메이드왁스는 여기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실리콘의 카나우바 함량을 일정수준까지 높여도 어느정도의 발림성을 확보해주었고, 닦아내는데 있어서도 굉장한 편안함을 선사했다. DODO Juice의 Dom Colbeck은 100% 천연물질로만 왁스를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그 역시 왁스다운 왁스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고 한다.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 역시 왁스다운 왁스를 만들어내는데는 실리콘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작업성에 있어서 실리콘은 매우 중요한 어드밴티지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실리콘의 점도에 따라 광택감과 왁스의 지속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실리콘의 발수성도 기본 특성으로 언급되고 있으나, 위의 테스트에서 보았 듯이 적어도 내가 사용한 실리콘은 그 자체로 뛰어난 발수성을 갖지는 못했다.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실리콘의 종류는 매우 제한적이다보니 여러가지 실리콘을 이용한 다양한 시도는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리콘이 왁스 성능의 MVP는 아닐지언정 왁스에는 없어선 안될 VIP임에는 틀림없다.
카나우바 자체의 발수력(소수성)은 어느정도일까?
이번 포스팅을 통해 실리콘을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으며, 왁스 본연의 성능은 반드시 실리콘에 의존해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지난 포스팅의 제목 "카나우바왁스를 믿습니까?"에서 견지하고 있는 본질적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왁스의 주요 성능이 실리콘에서 나오는게 아니라면 그 성능은 카나우바에서 나오는거라 생각할 수 있는가.
4가지 재료에 대해 물방울의 접촉각의 차이를 확인해보도록 하자. 물방울 모양이 구형에 가까울수록 소수성(hydrophobicity)이 강하며 이는 곧 발수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T3급 카나우바왁스, T1급 카나우바왁스, 파라핀왁스, 비즈왁스를 녹여 그 액을 깊이가 있는 평판에 부어 식힘으로써 재료를 평편한 형태의 시료로 만들 수 있다.
∥ 차가운 수돗물을 스프레이에 담아 분무할 것이다.
지금부터는 각 재료별 차가운 물을 스프레이하여 재료 표면에 형성되는 물방울을 모양을 관찰해보자. 판단에 도움을 주기 위해 각 재료별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 2컷을 올렸다.
▶ T3급 카나우바왁스
▶ T1급 카나우바왁스
▶ 비즈왁스(Bees wax)
▶ 파라핀왁스
파라핀왁스 표면의 물방울 접촉각이 가장 컸으며, 비즈왁스는 파라핀왁스보다는 접촉각이 작았고, T1급, T3급 카나우바왁스보다는 접촉각이 크게 보였다. T1급과 T3급 카나우바왁스간의 물방울 접촉각은 의미를 둘 수 있을만큼의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접촉각 : 파라핀왁스 > 비즈왁스 > T1 카나우바왁스 = T3 카나우바왁스
발수력 좋은 카나우바왁스를 발랐을 때 표면에 형성되는 구형에 가까운 물방울 모양들은 카나우바 본연의 소수성으로 인해 형성되는 것이라 볼 수 없을 것 같다. 홈메이드 왁스를 만들면서 포기하고 싶게 만든 고비 중의 또 한가지는, 카나우바왁스, 솔벤트, 실리콘의 조성으로 아무리 배합해도 그 형편없는 발수력을 끌어올릴 방법을 찾지 못했을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카나우바 자체의 발수력이면 충분할 줄 알았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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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의 본질은 에소프레소지 결코 물이 될 수 없다. 에소프레소보다 물의 양이 훨씬 더 많더라도 말이다. 최고급 생수 에비앙의 할아버지를 가져다 넣더라도 아메리카노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카나우바왁스에 카나우바보다 솔벤트의 함량이 훨씬 높더라도 솔벤트가 본질은 될 수 없듯이.
그럼 카나우바왁스의 본질은 카나우바일까?
나는 이 질문에 다소 심각한 이의를 제기한다.
카나우바왁스를 졸이면 속이 보인다.
카나우바왁스를 가열해서 재료들의 함량을 가늠하는 방법은 4년전 카나우바왁스를 분석하기 위해 이미 시도했던 것으로 이번에는 다른 왁스를 대상으로 시험해봤다. 카나우바왁스 레시피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황에서는 상당히 유용한 방법임에도 웹상에서는 이런 시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이상할 따름이다. 아니면 내가 찾지 못한 것일 수도.
다소 심각한 이의제기는 카나우바왁스 성능의 본질이 카나우바 플레이크가 아닐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다시 말하면, 혹시 다른 물질이 카나우바왁스 성능의 본질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던지는 것이다.
고급 브랜드의 카나우바왁스를 졸여보았다.
중탕으로 졸이다가 반응이 늦어 중탕물 빼고 가열하자 이내 곧 하얀액이 흐물흐물 분리되기 시작했다.
반구틀 중앙에 약간 탁한 액이 뭉치기 시작했다. 이때 반구틀의 온도는 95도 전후였다.
계속 졸이다보니 액의 색상은 더욱 짙어졌고 하얀액의 양도 많아졌다.
솔벤트의 완전한 휘발을 위해서 더 가열을 유지할 필요는 있었지만 이번 테스트의 목적은 함량 분석이 아니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졸임을 멈추고 액을 식혔다. 가운데 모인 하얀 액이 크림처럼 변했다.
그렇다. 다소 심각한 이의제기는, 저 하얀 크림같은 물질이 왁스의 '액기스'가 아닐까하는 것이다. 그렇담 저 푸르딩딩하게 굳어있는 카나우바는 뭐란 말인가? 아메리카노의 에비앙 생수쯤 되는 것일까? 저 하얀 크림과 원래의 카나우바왁스를 테스트 판넬에 발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보기로 했다.
테스트 판넬은 폴리싱으로 표면 클리닝 후 카샴푸 원액을 부어 마구 문질러줬고 그 위에 물을 뿌려 다시 열심히 문질러 세척했다. 약발수의 물빠짐(쉬팅)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탈지여부보다는 현재의 발수상태를 기억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오른쪽보다는 왼쪽의 물빠짐이 약간 느리게 보인다.
하얀크림을 바를 때의 느낌은 미끌거리기는 했으나 퍼짐성은 좀 떨어지는,,,그래서 저 작은 부위를 바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다른쪽에는 원래의 카나우바왁스를 손으로 떼어내어 꼼꼼히 발랐다.
왼쪽이 하얀크림을 바른 곳이고, 오른쪽이 카나우바왁스를 바른쪽이다.
슬릭감과 광택감의 차이
약 5분 후 각각 다른 타월로 버핑을 끝냈고, 손끝으로 각각의 부위를 터치했을 때 하얀 크림을 바른쪽이 더 슬릭함을 느꼈다. 육안으로는 양쪽간 광택감의 차이를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작은 부위에 발라놓고 광택감의 차이를 느끼기는 사실 매우 어렵다.
발수력 평가
버핑 직후의 발수력을 비교해봤다. 좌우의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볼 수 있다.
화이트 카나우바 플레이크가 들어가면 발수력이 더 좋아질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카나우바 함량이 높을수록 발수력이 더 좋아질거란 생각도 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세차 내구성 평가
카샴푸를 아주 진하게 타서 스폰지로 각 부위를 동일하게 열심히 박박 문질렀다.
다음은 1회 세차 후 헹굼하는 장면이다.
샴푸액이 씻겨내려간 후부터는 세차 전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발수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왼쪽편은 카나우바 피막도 없는데 강한 세차에도 잘 버텨주고 있다. 발수력으로 카나우바 피막이 있다 없다를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비온 후 본넷에 물방울이 짱짱하게 맺혀있는 것에 카나우바 피막 덕분이라며 좋아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다음은 동일한 방법으로 2회 세차 후 헹굼하는 장면이다.
2회 연속 세차에도 양쪽간의 발수력엔 차이가 없어보인다.
다음은 동일한 방법으로 3회 세차 후 헹굼하는 장면이다.
여전히 발수력은 뛰어나다. 보기엔 카나우바왁스를 바른 오른쪽이 아주 약간 더 발수력이 좋아보인다. 그러나 유의미한 차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음은 동일한 방법으로 4회 세차 후 헹굼하는 장면이다.
이번엔 스폰지로 더 박박 닦았건만 양쪽 모두 발수력엔 큰 차이가 없었다. 아무래도 카나우바 피막 덕분에 세차를 해도 비딩이 짱짱하게 살아있다고 좋아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발수력과 발수력의 세차 내구성면에 있어서, 카나우바 왁스를 바른쪽과 카나우바왁스에서 추출한 하얀 크림만 바른쪽과 어떤 차이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럼 카나우바는 대체 뭐란 말인가?
그렇지만 카나우바의 나름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테스트판넬의 왼쪽편에 하얀 크림을 바를 때 바르기가 무척 불편했다. 퍼짐성이 떨어져 좁은 부위를 반복해서 발라가며 전체를 바를 수 있었다. 그 하얀 크림은 카나우바왁스 2g에서 추출되었다. 카나우바 왁스 2g의 분량이면 하얀 크림을 바른 부위 면적의 10배 가까이 바를 수 있는 양이다. 카나우바가 들어감으로 인해서 물성이 바르기 쉽게 변했고, 최적의 물성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솔벤트 덕분에 바를 때의 퍼짐성이 아주 좋아졌다. 또한 하얀 크림을 더 많이 바른다고 해서 왁스의 기본 성능에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는 않기 때문에 카나우바와 솔벤트에 적당량의 비율로 첨가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카나우바는 예로부터 광택효과를 위해 첨가되는 물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얀 크림을 바른 쪽보다는 카나우바왁스를 바른 쪽이 광택효과가 좋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가능성이 높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테스트 판넬만으로는 사실 광택감의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카나우바 피막의 존재만으로도 외부 위해요소로부터의 물리적 방어막을 형성한다. 카나우바 피막이 설령 슬릭감, 발수력, 광택감에도 영향을 주는 요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물리적 방어막 그 자체는 매우 유익한 존재이다. 그러나, 카나우바 피막의 존재를 확인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져버렸다. 슬릭감으로도, 광택감으로도,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그렇게 믿어왔던 발수력으로도 카나우바 피막의 존재를 구별할 수 없어졌으니 말이다. 여름에 카나우바왁스를 발랐을 때 열을 받고 나타나는 헤이즈(haze) 현상을 통해 카나우바 피막의 존재를 느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보다 명확해진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왁스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했던 기준들은 카나우바 피막 자체의 존재를 평가하는데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동안 카나우바 왁스의 성능이라 생각했던 그 특성들이 사실은 카나우바라기보다는 첨가물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카나우바가 왁스의 성능에 아무것도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 까지는 밝히지 못했지만, 카나우바왁스의 퍼포먼스는 카나우바의 역할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도 될만큼의 증거는 확보한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왁스를 만드는데 꼭 카나우바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왁스를 만들어보면서 경험해본 몇가지 왁스재료들 비즈왁스, 칸데릴라왁스, 세레신왁스, 파라핀왁스, 오조케라이트 왁스 등은 각각의 왁스재료를 카나우바 대신 주원료로 사용했을 때 문제점이 있다. 발림성은 솔벤트의 함량과 실리콘의 도움으로 별 문제가 되지 않으나 닦임성에 있어서는 심한 잔사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그런면에서 카나우바는 아주 훌륭했다. 물론 카나우바를 주원료로 하고 다른 왁스를 약간 첨가하는 정도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카나우바만큼 왁스 잔사를 남기지 않는 왁스재료가 있다면 카나우바 대신 써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저 하얀 크림같은 물질의 정체는?
고급 브랜드의 카나우바 왁스 제조사들은 대체로 그들이 그동안 구축해놓은 프레임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카나우바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시멘트보다도 더 단단한 물질이다. 카나우바함량이 높을수록 왁스의 퍼포먼스는 뛰어나다. 카나우바의 정제도가 높을수록 광택감이 뛰어나다. 천연재료들을 사용하여 인체에 해롭지 않다.'
지금은 오히려 소비자가 이런 프레임에 편안해할 수도 있다. 화이트 카나우바의 함량이 높을수록 왁스가 고가인건 이상할게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난 저 하얀 크림같은 물질을 실리콘이라 생각한다. 미끌거리고, 발수력 좋고, 바르면 반짝거리는 물질.
나의 홈메이드 왁스에도 실리콘이 들어간다. 그리고 왁스를 졸여보면 저 하얀 크림같은 물질로 추출된다. 실리콘이 들어갔을 때의 장점은 아주 많다. 솔벤트와 적절한 비율로 혼합되었을 때 왁스의 발림성과 닦임성이 매우 좋아진다. 또한 실리콘을 넣지 않았을 때는 어떤 피막감을 느끼기 어려웠으나 실리콘을 첨가하면서 왁스의 피막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가 취할 수 있는 실리콘의 종류가 매우 제한적이다보니 발수력 향상에는 별 재미를 못보았다. 물론 다른 방법으로 왁스의 발수력을 향상시켰지만 발수력까지 뛰어난 실리콘을 사용할 수 있다면 홈메이드 왁스의 완성도는 분명 더 높아질 것이다.
실리콘의 종류가 많고, 다양한 점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리콘이 들어간다는 사실만으로 뛰어난 성능의 왁스를 바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리콘의 종류, 점도의 선택(필요에 따라서 몇가지 점도의 실리콘을 혼합해서 적합한 점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첨가되는 실리콘의 비율 등이 잘 맞아야 비로소 충분한 성능발휘가 된다.
그런데 왁스에 실리콘이 들어가면 천연왁스가 아니지 않느냐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실리콘(하얀 크림같은 물질)이 들어있지 않은 카나우바왁스를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자이몰, 스위스벡스, P21S, 케미컬가이, 블랙화이어, 숄컨셉...모두 녹여서 졸여봤지만 예외는 없었다. 자사의 카나우바 왁스에 실리콘이 들어간다고 스스로 밝히는 회사도 있다. 그것은 차가꿈(디테일링) 애호가라면 익히 알고 있는 도도쥬스라는 회사이다. 그들이 실리콘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아주 고가의 천연왁스를 테스트해봤더니 실리콘 범벅(drowning in silicone)이었다. 거의 모든 제품에 실리콘이 들어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정작 제조사들을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
천연재료로만 100% 써서 왁스를 만들어봤지만 제대로된 왁스가 아니었다. 인공첨가제가 들어있지 않다는 제품들은 성능이 아주 떨어지는 제품이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100% 천연재료만 써서 만든 왁스로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는 제품이 있다면 IR Spectrometer(적외선분광기)로 검사해보고 싶다. 분명히 실리콘이 검출될 것이다. 이미 그렇게 해서 몇개의 제조사를 잡아낸 적도 있다.
실리콘이 들어간 도도쥬스 제품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고/중/저/무 함량으로 나눠보면...(생략)
도도쥬스는 카나우바왁스에 대해 상당히 솔직히 말해주는 거의 유일한 제조사이다. 그들은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그들의 제품에 실리콘이 들어가 있다고. 내 경험으로부터 얻은 생각들과 그들이 말하는 내용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보니 개인적으로 그들이 말하는 카나우바왁스 이야기를 신뢰하는 편이다. 물론 그들 역시 100% 신뢰하지는 않는다.
요 약
카나우바는 솔벤트와 기타 첨가제들과의 배합을 통해 베이스 왁스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어떤 면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보이기는 어렵다.) 카나우바왁스를 평가하는 지표들(물방울맺힘, 물빠짐, 광택감 등)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는 역부족이다. 소비자의 기대치를 총족시키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카나우바가 아니라 (그 하얀물질이 실리콘이라는 가정 하에서) 실리콘이 아닐까 강하게 이의를 제기해본다.
감사합니다.
# 업데이트 (2013. 11. 9)
본 포스팅 '카나우바왁스를 믿습니까?'에서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카나우바왁스의 성능은 카나우바가 아니라 실리콘에서 나온다.'라는 주장에 대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있음을 스스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중심으로 다음 포스팅을 작성할 예정입니다.
# 업데이트 (2013. 11. 12)
본 포스팅의 내용에 반론을 제기하고 카나우바왁스를 재탐구하는 포스팅을 작성하였습니다.
본 포스팅을 보셨다면 '카나우바왁스의 재탐구' 포스팅을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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